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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따라 중명정에 가다

열두발바닥 2019. 6. 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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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햇살이 좋은 날. 이대로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시청으로 갔습니다. 일단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시립미술관을 구경하고 오면 좋겠다 싶어서, 시립미술관을 들어 갔는데, 상설전시관이 문을 닫았더라구요. 이대로 가기 아쉬워서, 정동길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옆 정동길

 

정동제일교회 옆길을 따라 걷는데, 정말 걷기 좋은 길이더군요.  옆에 정동극장도 보입니다.

 

정동극장

 

정동길은 대한제국 시절에 정치와 경제의 1번지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한제국 시절의 건축물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정동극장 옆으로 중명전으로 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중명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상황에서 대한제국시절 건축물인 거 같아 구경하러 가보았습니다.  막상 가서보니 정말 잘 갔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명전 전경 1
중명전 전경 2

중명전은 아주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  황실의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할 황제의 서고로 지어진 중명전은 황궁으로 정비되어가던 덕수궁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고종이 이을 편전으로 사용하였던 장소입니다. 1905년 11월에 일본의 강압 속에서 바로 이곳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습니다. 을사늑약을 통해 빼앗긴 외교권을 시작으로 주권을 잠식당하던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에 병합되었습니다.

 

중명전 전시실에는 을사늑약 현장을 그대로 제현하였습니다. 을사오적과 이토 히로부미가 거의 실제 사이즈로 제작되어 회담장소에 떡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와 침통함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을사늑약 체결 현장

 

을사오적은 이완용(, 학부대신), 박제순(, 외부대신), 이지용(, 내부대신), 이근택(, 군부대신), 권중현(, 농상부대신)을 말합니다. 실물 그대로 제현하고 있습니다. 을사오적신이라고도 합니다. 

 

을사늑약은 아래와 같은 사유로 부당하게 체결된 조약입니다.

 

1. 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못한 조약

 - 을사늑약문 원본에는 제목이 없으나, 이본이 국제사회에 공포할 때에는 임의로 "Convention" 이라는 제목을 붙여 보호조약으로 성격을 규정하였다.

 - 각국 통수권자가 조약체결 당사자에게 주는 전권위임장이 없다.

 - 대한제국 최고 통수권자인 고종의 어새와 비준 절차가 없었다.

 

2. 무력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조약

 - 일본의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과 강압에 의해 체결되었다는 점에서 을사늑약은 애초에 무효인 조약이었다. 이 점에 근거하여, 이미 1906년 프랑시스 레이가 [국제공법]에 기고한 논문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성과 무효성을 주장하였고, 1935년과 1963년에도 국제법상으로 무효인 조약임이 재확인되었다.

 

을사늑약 강제 체결 일지

다른 전시실에는 을사늑약에 대한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고종이 파견했던, 헤이그 특사에 대해 자세히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명전은 분명 지우고 싶은 역사의 한장면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종로의 고층 빌딩 사이로 덩그러이 놓여 있는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편전으로서의 가지고 있던 위엄도 주변 부속건물들이 일제의 강제 철거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중명전은 지우고 싶은 역사이면서, 꼭 잊지말아야할 역사의 장소로..  꼭! 아이들과 함께 가봐야만 할 보석같은 장소입니다.

 

고종황제 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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